아픈 기억도 세월이 흐르다보면 결이 삭아 오히려 아름답게 추억되기도 하는가...
안델센 동화에 나오는 가로등같이, 저물어가는 계절의 하늘에 샛별만한 장미생각 하나를 떠올려봅니다.
58일만에 낯선 우리집에 와서, 제가 화장실을 찾아갔던 강아지였습니다. 석달째부터 산책을 나가곤 했는데, 맞은편에서 어린 아기가 아장아장 엄마아빠와 오는 것을보고 반갑게 갔으나 아기가 무서워하자 곧바로 돌아서서 반대쪽으로 산책하는 아이였지요.
이처럼 어린 녀석이 워낙 출중해 한번도 이래라 저래라 한적 없습니다. 그냥 스스로 모든 것을 혼자 해나갔습니다.
다섯달째 부터는 안고 건널목을 건널때, 제가 내리겠다해 능숙하게 잘 건너는 겄이었습니다. 행하는 모든것이 시원시원해 엄마아빠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장미가 생후 5개월째되는 한달동안, 건널목 건느는데 익숙해지더니 다음 달에 6개월된 진주가 와서 같이 생활하게 되었는데, 통제하는 줄 없이 길 건너는 방법을 장미로부터 진주는 배운것입니다.
그러니 진주에게서 루비1호, 다시 루비 2호로 이어지는 우리집의 건널목 역사는 맨 처음 장미가 시도했고 정착시켜 전수한것이니 우리집 최초의 사부인셈입니다.
장미는 세살때 심장병 판정을 받고, 5개월 시한부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심장병 약만 먹고 여덟살 가까이 살아, 심장병 전문의를 놀라게 한 신화도 장미가 만든 역사입니다. 운명에 순응하지않고, 마음에 안드는 운명은 내힘으로 바꾸겠다는 녀석인 셈이죠.
산책을 하루에 두번 했으며, 한번 간 코스는 절대 되풀이 다니지않고 개척했습니다. 이 중병에 걸린 녀석의 코가 항상 반들반들 그야말로 매사에 긍정의 신이라 불릴만 했습니다.
세살때 5개월 안에 하늘나라 간다던 녀석이 네살을 넘기니, 심장병 전문의가 자신의 진단이 한번도 빗나간적 없어 궁금하다며, 명절에 고향갈때 청주의 병원에서 다시 한번 진찰해보고 싶다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서 갸우뚱 하며, 도대체 어떻게 애가 저절로 50퍼센트나 좋아져있다...는 건데, 이런건 순전히 이 아이 장미의 불굴의 기질 덕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남들은 우리 부모가 뭔가 잘해서 그럴것이다 하지만, 부모로선 결코 내세울게없고 제가 놀랍게 잘한 결과입니다. 부모로서 한 일이라면, 이 녀석의 기질을 미리 파악해서 모든것을 그녀석에 맞춰 생활한것
뿐입니다. 장미까지 네 아이가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모두 기질이 달라 그 특성에 맞추어 준것이 다들 만족하게 그래도 부여받은 한 생을 살고갈수있지않았나
싶습니다.
장미는 입맛이 없을 때면 제가 사료 그릇을 앞에놓고 물러나 으르릉대며 화들짝 달려들어 원수를 공략하듯 와작와작 먹어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럴때 자가발전(自家發電)이라 했습니다.
이녀석은 아픈 몸에도 순발력과 판단력이 월등해 세멘트바닥으로 물이 흐르는 수로의 이쪽에서 도움닫기해 공중에 뜨고보니 수로가 너무 넓어 당황했나봅니다. 우리는 미처 말릴틈도없이 이젠 큰일 났구나 하는순간, 이녀석이 공중에서 헤엄치듯
허공을 휘젓더니 한번더 도약해 아슬아슬하게 건너편에 착지하는 것입니다. 마치 고양이처럼...
결국 이런 무리한 것들이 아픈 몸에는 더욱 부담이 될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봅니다. 워낙 과감해, 안다쳐도 될일을 벌써 몇몇번 다쳐 그때마다 일주일 이상 꼼짝 못하고
누워지낸 적이 있습니다. 죽어도 입원은 안하는 성격이라, 병원에서 약을 타다가 집에서 관리할수밖에 없었죠.
한번은 척추에 이상이 생겨 두달간 제 자리위에서 못내려 온적이 있는데, 이때 담당 주치의가 이젠 도저히 일어날수없을 것이라 진단했습니다. 정작 녀석은 태연자약했고...용변은 카테타로 대신했습니다.
이 녀석이 딱 두달을 채우더니 씩씩하게 일어나지않겠습니까. 정말 만세를 부를만했습니다. 다시 산책 잘 다니고...이런 마지막 선고받은 일이 제법됩니다. (좋은 약을 처방하여 당시 고비마다 우리 장미를 일으킨 의료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녀석은 엄마아빠에게는 방언을 했습니다. 외출했다 오거나 하면 반갑다고 짖는 대신 아랍어같은 방언을 하는데 대충 이미지만 알뿐 알수없습니다. 사람말을 하는건데, 성대가 달라 표현이 달라진 경우로 봅니다. 같이 있는 진주에게는 으르릉 이나 짖어서 의사를 표현했죠.
학습 능력이 우수한 진주가 롤모델로 삼은 이가 바로 장미입니다. 진주가 하도 영특해 장미의 그림자도 밟지않을 정도였습니다. 장미가 하늘나라가고 진주는 사람같이 공황장애로 일주일간 안정제를 지어 먹었습니다.
장미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지녔지만, 동시에 부드러운 이미지도 갖춘 이른바 뛰어난 여왕급에 해당한다 하겠습니다.
이런 과정속에서 장미는 독특한 철학적 사고가 깊어지고, 그 아픈 녀석이 늘 코가 반들반들 스스로를 독려하며 푸른 하늘을 떠가는 흰구름 만큼이나 유장한 삶을 살다간 셈입니다.
산책길... 금단추만한 노란 민들레꽃이 드문드문 길섶에 흩어져있을 때면 코를대고 음미하던 모습이 손에 잡힐듯 떠오릅니다.
장미사진은 제가 장미에게 부탁해 하늘나라 가기 한달도 채 안남았을때 찍은 것인데, 이 녀석이 그전에는 사진을 못찍게해 제대로된 사진이 없었습니다. 어느오후 카메라를 들고 부탁하니 다소곳 포즈를 취해주는 바람에
약 십분간 찍을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야외에서도 한두번 포즈를 취해 주게되는데, 저도 떠날걸 예비했나봅니다. 하지만, 얼마 후 곧 하늘나라로 떠나야하는 불치병환자의 모습은
죽기전날밤 이전까지는 찾아볼수없습니다.
장미는 참으로 많은 일화가 있지만, 생략하고 그후의 일을 간략히 적겠습니다. 2010년 4월 19일 밤 장미는 낮 산책을 잘 마치고 저녁부터 전신의 경직이 시작되었습니다. 혀가 새파랗게 되는데도 차마 병원에 가서 안락사 문제를 의논할수없는것이 여태껏 한계선상을 오가며 열심히 살아난 아이에 대한 모독일것 같아 같이 고통을 견디는 심정으로 안고 있었습니다.
이때 온몸과 다리는 모두 뻣뻣해 도저히 소생 가능성은 없어 보였습니다. 워낙 고통이 심하니 약간의 용변을 흘리게돼 바로바로 닦아주고 했는데, 밤 12시쯤 화장실 앞에서 갑자기 내려달라 했습니다. 이젠 정말 좋아지나보다...여기며 내려놓으니 세면장으로 가 서서 꼬리치는 것이
씼어달라는 애깁니다. 깔끔을 떠는 장미다운 요청입니다.
그 경직이 심해 철근같은 다리가 제대로 부드럽게 서서 꼬리치니, 한편 놀랍고 기뻐 얼른 목욕하고 말려주었습니다. 다시 감사의 꼬리를 치고 그때부터 아빠인 제 품에 안겨 밤새 같이 나란히 보낸 셈입니다.
4월20일 아침 일곱시경 갑자기 이녀석이 눈을 들어 제 얼굴을 보는 느낌에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장미 예쁘구나...정신차리자! 하며 눈을 맞추자, 잠시후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이렇게 장미는 파란많은 일생을 마쳤습니다.
다시 목욕을 한번 했는데 씻은듯이 깔끔했습니다. 그후 아쉬워서 이틀간 특별한 조처없이 그대로 눕혀두었는데 화장장이 있는 경기도로 떠날때까지 오줌 한 방울 흘린적 없습니다. 아주 평온하게 잠자는 모습 그대로였는데, 아마 이때는 제천의 굿바이펫이 아직 설립되기 이전일것입니다.
이제 이 자리를 빌어 굿바이펫의 한실장님께 부탁드리고픈 것은 우리집 가장 선배가 되는 장미를 경기도에서온 전입생쯤으로 받아주십사 하는 것인데, 우리집 아이 셋을 하늘로 인도하신 그 정다운 손길로 장미 또한 이끌어주십사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장미는 오래전 집을 떠날때의 그 심정 그대로, 아직도 반들반들한 코로 한달음에 달려와 굿바이펫 한실장님의 제천시보다 더 넓은 가슴에 와락 안겨들것입니다.
비록, 화엄경에서는 하늘에 생겨났다 스러지는 구름같이, 나고 죽고 가고 오는 것이 모두 이와같이 허무하다... 했지만, 우리 반려동물들의 가족들은 죽은 후에라도 늘 우리곁에서 함께한다는 믿음속에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고 할 것입니다.
이풍진 세상에서, 우리 인생을 더욱 풍부하게, 즐겁게, 더러는 눈물겹게 만들어준 반려동물 아이들을 영원히 기억할것입니다.
늘 활화산같이 뜨거운 가슴으로 우리 반려아이들을 하늘로 인도하는 굿바이펫 한실장님과 함께...

